
이재우(43·가정의학과) 호스피스센터장
"명절이라고 다르진 않아요. 들뜨지도 무겁지도 않은 차분한 일상을 만들어드려야 하니까요."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 4일, 충북대학교병원 본관 9층 호스피스 완화의료전문병동은 고요했다. 복도에는 환자와 보호자의 대화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 의료진들은 차트와 요법 프로그램 일정을 묵묵히 확인했다. 이번 연휴에도 3명의 환자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 "의사의 의미를 다시 쓰다"
이재우(43·가정의학과) 호스피스센터장이 본관 9층에 온 지 8년이 넘었다. 의대생 시절부터 호스피스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서울에서 2년간 전문 경험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의사'에 대한 정의도 새로 썼다.
"의사는 치료하는 사람이라고 많이 인식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사람은 결국 마지막 순간과 마주하게 되거든요. 그 시간을 함께 정리하는 일도 생명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거죠."
◆ 명절이 두려운 이유

지난 4일 충북대학교병원 본관 9층 호스피스 병동의 모습.
환자와 보호자에게 명절은 달갑지 않다. 사별의 순간이 혹여나 명절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명절이 다가올수록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뭔지 아세요? '명절에 돌아가실 수도 있느냐'는 거예요. 기대 여명에 대한 답을 하는 의료진의 마음도 많이 무거워지죠."
환자에게 간단한 엑스레이조차 잔인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검사 후 건강에 무리가 생겨 임종기로 넘어가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치료에 대한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환자의 상태는 더욱 악화된다.
이 센터장은 작별한 환자들을 자주 떠올린다. 모든 판단이 환자를 위한 선택이었는지 돌아보는 습관 때문이다.
◆ 20일, 짧지만 깊은 인연

지난 4일 충북대학교병원 본관 9층 호스피스 병동의 모습.
호스피스 병동 곳곳에는 환자들이 만든 그림과 드림캐처가 전시돼 있다. 미술·원예 요법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면 새로운 작품이 걸린다. 장은영(51) 간호사는 스스로를 병동 큐레이터라 부른다.
2021년 4월 호스피스 병동에 발령받기 전까지 그는 주로 외과병동에서 근무했다. 완치돼 퇴원하는 환자들을 보던 그에게, 이곳은 다른 의미의 퇴원을 마주하는 곳이다.
"입원 환자분들은 평균 20일 정도를 병상에서 지내고 가세요.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감정이 전이돼요. 슬픔을 통감하는 일이죠. 무뎌지는 것도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무섭고 두려운 곳이 아니에요"
의료진들의 가장 큰 바람은 환자의 편안한 임종이다. 그리고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 개선이다.
호스피스는 여전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 전에 가는 곳'이라는 오해에 쌓여 있다. 환자의 아픔을 덜고 남은 가족의 마음을 채우는 곳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내 가족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공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만 막연하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만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환자의 여생에 높은 문턱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충북대병원 호스피스병동에는 10명(의사 1명, 간호사 8명, 사회복지사 1명)이 근무하며 9병상을 지킨다. 가정형, 자문형 등의 형태로도 말기 환자들에게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명절에도, 평일에도, 이곳 의료진은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존엄하게 지키기 위해 차분히 걸음을 옮긴다.
최종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