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파타야에서 공범 2명과 함께 한국인 관광객을 납치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A(27)씨가 조사를 위해 경남 창원시 성산구 경남경찰청 형사기동대로 이동하고 있다. A씨는 이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캄보디아에서 붙잡힌 지 58일 만이다. 사진/뉴스1 제공
여름방학을 이용해 캄보디아로 출국한 한국인 대학생 납치·살해 사건의 용의자들이 국내외에서 잇따라 검거되고 있다.
캄보디아 당국은 중국인 용의자 3명을 체포했고, 국내에서도 피해자를 유인한 조직원 일당이 붙잡혔다.
"은행 통장 비싸게 팔린다"…국내서 치밀하게 유인
11일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경북 예천 출신 대학생 박모(22)씨 납치·살해 사건 조직원 A(27)씨를 지난달 중순 체포했다.
박씨는 지난 7월 가족에게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A씨는 국내에서 박씨에게 접근해 "현지에 가면 동료들이 은행 통장을 비싸게 사줄 것"이라며 출국을 유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수익 일자리를 미끼로 해외 취업을 유인한 것이다.
경찰은 이들에게 대포통장 알선과 폭력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확보한 진술을 토대로 출국 경위부터 납치, 금품 갈취 협박, 고문, 살해에 이르는 전 과정과 총책을 추적하고 있다.
박씨가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조선족 말투를 쓰는 남성이 박씨의 휴대전화로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에서 사고를 쳐서 감금됐다. 5000만원을 보내라"는 협박이었다.
고문 끝 심장마비 사망…중국인 용의자 3명 검거
가족들은 즉시 주캄보디아 대사관과 현지 경찰에 신고했지만, 며칠 뒤 연락이 끊겼다.
박씨는 지난 8월 8일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르산 인근 범죄단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사인을 '고문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추정했다.
캄보디아 당국은 이 사건의 용의자 중국인 3명을 붙잡아 살인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도주 중인 또 다른 중국인 용의자 2명을 추적하고 있다.
시신 2개월째 송환 못 해…외교적 압박 강화
정부는 지난달 경찰 인력을 현지에 파견해 시신 확인과 송환을 추진했으나, 캄보디아 정부의 협조가 늦어지면서 박씨의 시신은 2개월째 송환되지 못하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1일 쿠언 폰러타낙 주한캄보디아 대사를 초치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대책을 촉구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주캄보디아 대사관이 경찰청과 협력해 캄보디아 사법 당국에 신속한 수사를 요청하고, 유족과 긴밀히 소통하며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금 한국인 2명 160일 만에 구조…"더 많은 피해자 남아"
반가운 소식도 들어왔다. 지난 2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의 한 호텔에 감금됐던 한국 국적 남성 2명이 현지에서 160여 일 만에 구조됐다.
이들이 텔레그램을 통해 보낸 구조 요청이 박찬대 의원에게 전달됐고, 외교부와 영사관 등과 소통해 두 사람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구조된 이들은 아직 많은 한국인이 감금과 폭행 속에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수사 난항…텔레그램으로 은신처 옮기며 활동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가면 돈 많이 쳐준다'고 말한 유인책을 검거해 수사 중"이라며 "공범들이 텔레그램 등으로 은신처를 옮기며 활동해 수사가 쉽지 않지만, 붙잡은 조직원을 통해 총책까지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 특히 캄보디아 같은 경우는 현지 경찰관들이 공조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 한국인 납치 2년새 30배 급증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겨냥한 납치·감금·폭행·살해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인 납치 신고 건수는 20222023년 연간 1020건 수준에서 지난해 220건, 올해 8월까지 330건으로 급증했다. 불과 2년 만에 3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액 아르바이트, 해외 취업 등을 미끼로 젊은 층을 유인하는 수법이 조직화·지능화되고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허재원 기자